키워준 할머니가 너무 껄끄러운데 어떡하지

공지사항 24.06.04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람. 지금은 스물한살.

중학교 때까진 할머니가 좋았고 같이 살면서 불편했던 점도 없었음. 고등학교 때는 가끔 나한테 엄마 욕을 하는 게 거슬리기 시작했지만 엄마랑 할머니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동조 안 하고 대충 넘기면 계속 하진 않으셔서 크게 불편하진 않았음.

그냥 그렇게 살아오다가 작년 추석에 할머니가 불편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김. 삼촌이 우리집에 오셨는데 다같이 밥을 먹고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랑 삼촌이 얘기를 하기 시작함. 우리집이 작기도 하고 방음도 잘 안 돼서 내가 방에 있는데도 밖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다 들렸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중간에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옴. 내가 그때 스무살이었고 나름 명문대에 진학했어서 처음엔 그에 대한 칭찬을 하셨음. 그러다 나에 대한 단점이나 내 컴플렉스에 대한 얘기를 삼촌한테 하기 시작함. 처음엔 살짝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할머니도 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을 거고 저렇게 푸실 수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내용이 깊어지더니 가족만 아는 내 컴플렉스에 대해 얘기하고 남한테 말하기 창피하고 내가 숨기려하는 점까지 전부 얘기하는 거임.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할머니한테 감. 화 누르고 애써 장난스럽게 왜 이렇게 내 욕을 해요~ 다 들려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고 삼촌이 그런 거 아니야 하면서 대충 달래주고 용돈 주면서 얘기는 끊김.

근데 내가 진짜 빡친 포인트는 다음날임. 다음날 고모가 오셨는데 전날 삼촌한테 했던 얘기를 똑같이 또 하는 거임. 밖에 나가서 화낼까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추석인데 친척들 앞에서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에어팟 끼고 내 방에 있었음. 대충 2-30분은 내 험담한 거 같았음. 다 집에 가신 뒤에는 살짝 진정이 돼서 이성적으로 할머니한테 내가 어제도 분명히 다 들린다고 했는데 왜 또 욕을 하시냐고 물어봄. 할머니는 그냥 웃고 넘기려 했고 내가 더 따지려는 순간 엄마랑 아빠가 오면서 상황이 그냥 넘어가게 됨. 이때 확실히 얘기하고 넘어갔어야 하는데 나도 후회 중임.

추석 이후로 할머니만 보면 내 욕하던 게 생각나서 지금까지도 할머니가 싫어하는 행동 일부러 자주 하고 먼저 말 잘 안 걸고 집에서 최대한 안 마주치려 하고 같이 밥 먹기 싫어서 일부러 나가서 먹고 오고 이러는 중임. 대놓고 화내고 툴툴거리고 할머니 싫어 이러진 않고 예의차리고 적당히 손녀로서 해야 할 일은 하면서 최대한 안 마주치고 말 안 섞으려는 정도임. 아마 내가 지금 빡쳐있는지도 모르실 듯. 나도 좋게 생각하고 그때 얘기를 잊으려는 노력 많이 해봤는데 잠깐 감정이 옅어지긴 해도 할머니 얼굴 보면 다시 또 떠오르더라. 단순한 뒷담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부분까지 다 얘기한 점이 꽤 큰 충격이었나봄.

원래 전에는 할머니가 구시대적인 언행을 하시거나, 부모님에게 쟤 왜 저러니 이러면서 내 험담을 하시거나,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고모삼촌에게까지 보고하시거나(참고로 난 고모삼촌이랑 전혀 친하지 않고 따로 연락해 본 적도 없어), 정말 사소한 걸로 잔소리를 하시거나, 나한테 엄마 욕을 하시거나 이럴 때 모두 옛날 사람이니 저러실 수 있지하고 넘겼다면 지금은 그럴 때마다 내 욕하던 게 또 생각나면서 티는 안 내지만 속으로 아 또 저러네 ㅈ같다 싶음. 솔직히 요즘은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언제 돌아가시려나라는 생각까지 듦.

고작 이런 걸로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할머니한테 이런 생각까지 하는 내가 너무 싫고 괴롭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데 너네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 할머니한테 솔직하게 얘기하고 풀라는 댓글 있을 거 같은데 사과받는다고 해서 이런 생각이 사라질 거 같진 않아. 아마 그때 화내지 않고 참았던 이유도 화낸다고 뭐가 달라지나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이미 벌어진 일에 사과를 받든 화를 내든 달라지는 게 없을 거 같아.

댓글쓰기

0/200자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비방 및 악성댓글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동방지 코드 8411

커뮤니티